이슈

[타파의 시선] 끝나지 않은 전두환 프로젝트: 윤석열 내란, 역사의 거울

essay50119 2025. 12. 13. 18:24
반응형

일본 외교문서: 12.12 군사반란의 '혁명' 규정

“미국은 5.16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혁명’을 승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46년 전인 1979년 12월 17일 오후 14시 22분, 주한일본대사 스노베 료조는 오카타 사부로 외무대신에게 극비전문을 보낸다. 일본대사는 전두환 일당이 벌인 12.12군사반란을 ‘혁명’이라 지칭했다. 그럼 1년 전인 2024년 12월 3일 밤, 일본대사는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을 자국에 어떻게 보고했을까. 궁금하다. 당장이라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신청해 확인하고 싶다.

 

 

 

 

2024년, '올 것이 왔다'는 직감: 윤석열 내란의 그림자

내란이 벌어진 밤, 필자는 막 미국에서 귀국해 수집한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비상계엄 관련 속보를 보면서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많은 국민들은 ‘아니, 설마 전두환 때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겠어’ 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윤석열과 군이 드론을 이용한 북한 공격과 풍선 등을 활용한 ‘북풍’을 기획했고, 정치인을 비롯한 중요 인사와 언론사 간부 등을 체포·구금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전두환이 벌인 12.12군사반란, 광주학살이 반복될 수 있었다는 것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뒤늦게 확인되고 있다.

 

 

 

 

윤석열 내란, 전두환 쿠데타의 데자뷰

윤석열의 내란을 보면서 국민들이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5·18민주화운동을 떠올린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뉴스타파 '전두환 프로젝트': 끝나지 않은 진실 추적

2019년 5월부터 뉴스타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수집한 자료로 ‘전두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박정희가 암살된 1979년 10.26사태부터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주로 ‘전두환 신군부’가 벌인 시민학살과 정권 탈취 과정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일본 외무성 기록: 쿠데타 모의와 5.18의 진실

1970년부터 1989년까지 주한일본대사관과 주한부산영사관에서 작성한 관내상황보고(1979~1982년), 한국정세(韓國政情, 박대통령살해·김재규재판·전대통령취임·광주사태), 한일관계, 한미관계, 미국 외교 시리즈에 전문(傳文), 정세 분석, 사건 보고서, 중요 인물 분석과 동향 파악, 한·일 중요 간부 회의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한일본대사관의 대사와 무관은 제한 배포, 대외비, 비밀(3급), 극비(1·2급) 등으로 등급을 나눈 뒤 외무대신에게 전보나 자필 보고서 형태로 기록을 보냈다.

 

 

 

 

미국 자료 발굴: 5.18의 진실을 향한 끈질긴 추적

일본과는 별도로 미국 자료도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산하 국립공문서관 2관(National Archives Ⅱ)에서 미국 국무부와 미8군사령부의 정보참모, 국방정보단의 군사정보대와 CIA에서 생산한 자료들을 매년 수집하고 있고, 정보공개(FOIA) 신청도 병행한다. 최근에는 공개 요청 10년 만에 5·18 관련 자료들에 대해 공개가 결정되는 성과도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풀리지 않는 숙제와 기록의 중요성

오랜 세월이 지났고, 여러차례 수사와 조사가 진행됐지만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선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제가 많다. 집단발포 명령의 존재 여부, 전달체계를 비롯한 계엄군의 무력 사용 경위, 12.12부터  5·18까지 미국의 직·간접적인 역할 등이다. 미국과 일본의 기록이 필요한 이유다.

 

 

 

 

윤석열 내란, 전두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윤석열이 벌인 12.3 불법 비상계엄, 내란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수사와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내란 1년이 넘었는데도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서 특검과 법원을 향한 비판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사와 처벌의 속도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역사의 교훈: 기록의 중요성

내란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기록'이었다기록만 제대로 관리되면, 조금 늦더라도 역사는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는 경우 역사는 언제나 퇴행했다. 40년이 넘도록 여전히 기록을 찾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전두환 쿠데타’가 좋은 예다.

 

 

 

 

핵심 정리: 윤석열 내란, 기록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윤석열 내란의 진실 규명은 40년 넘게 미완으로 남은 전두환 쿠데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모든 기록을 철저히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 달려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왜 일본 외교 문서가 중요한가요?

A.일본 외교 문서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의 시각과 판단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Q.윤석열 내란과 전두환 쿠데타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A.윤석열 내란은 전두환 쿠데타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뻔했습니다. 군을 동원하고, 북풍을 기획하며, 중요 인사를 체포·구금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과거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냅니다.

 

Q.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요?

A.윤석열 내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관련 기록을 철저히 수집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록을 통해 교훈을 얻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