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최루탄의 기억,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뜨거운 민주화 열정
박형준 후보, ‘서울의 봄’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을 맞다
1980년 5월, ‘서울의 봄’이라 불리던 민주화 열기 속에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박형준 후보는 시위대의 선두에 섰습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한창이었고, 박 후보는 시청과 플라자호텔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오른쪽 눈을 직격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었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당시 수배령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친척 집에 숨어 지내야 했으며, 이 부상으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산 시장직 도전,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는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세 번째 시장직에 도전합니다. 지난해 정권 교체 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그의 싸움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청에서 운동권으로, 언론사 기자, 시민사회 활동가, 교수, 방송 패널을 거쳐 국회의원과 재선 부산시장을 역임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다사다난했습니다. 그의 글과 인터뷰를 통해 굴곡진 삶을 조명합니다.

사투리 콤플렉스를 극복한 열정의 DNA
초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전학 온 박형준 후보는 사투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악착같이 표준어를 공부해 1년도 되지 않아 서울 아이들 못지않은 표준어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정의 DNA’는 그가 사투리를 고치듯,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원동력이 되어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4·19 혁명의 기억과 80년대 민주화 운동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시작된 부정선거 항의 시위는 김주열 열사의 죽음으로 전국적인 4·19 혁명으로 번졌습니다. 당시 시위대에 떡을 나눠주며 응원했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바로 박형준 후보였습니다. 20년 후, 그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의 봄’ 시위 현장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경찰의 최루탄을 맞았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최루탄의 아픔을 딛고 민주주의를 외치다
박형준 후보는 ‘서울의 봄’ 시위 당시 최루탄을 맞아 시력을 잃을 뻔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민주주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열정적인 삶의 태도는 부산 시장직 도전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박형준 후보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Q.박형준 후보는 언제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나요?
A.박형준 후보는 문청, 운동권 활동을 거쳐 언론사 기자, 시민사회 활동가, 교수, 방송 패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후 국회의원과 부산시장을 역임하며 정치 경력을 쌓았습니다.
Q.‘서울의 봄’ 시위 당시 최루탄 피격으로 인한 부상은 어느 정도였나요?
A.최루탄이 오른쪽 눈 등을 직격하여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었으며, 실명 가능성도 진단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병역 면제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Q.박형준 후보의 어린 시절 별명은 무엇이었나요?
A.초등학교 시절 사투리 때문에 '부산 촌놈'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표준어를 익히며 이를 극복했습니다.
